난 화를 잘 내지 못한다. 너무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논리적이지 못하면서 논리적으로 화내고 싶어서일까. 하여튼 적당한 때에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이다.(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화' 라는 제목부터 끌렸다.
책의 설명 첫 줄에, 올바르게 표출되는 '화'에 관한 희망 보고서.
라는 구문도 왠지 내가 올바르게 화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상치 않은 6명의 이름
진중권, 정재승, 금태섭, 홍기빈, 안병수, 김어준
을 보고 관심이 더 생겨서 구매하게 됐다.
여기서 특히 진중권이란 사람이 흥미로웠다.
얼마전 유시민-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됐는데,
내가 진중권이란 사람과 유시민이란 사람을 헷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왠지 이미지가 비슷하다)
게다가 진중권이란 사람은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논리적이고 공격적인 화법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으면 논리적으로 화를 잘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이러한 생각에 책을 구매했다.
표지의 인상이 강렬하다
이 책은 한겨레21 창간 15주년을 기념해서 개최한 6명의 인터뷰 특강을 정리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말그대로 스크립트여서 연사의 설명, 사회자의 진행이, 그리고 청중과의 질문과 답변들이 그대로(혹은 잘 편집되서) 실려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사실 실망이 앞섰다.
'화를 잘 내보자!' 라는 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진중권 - 대중의 화) 부터 신랄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진행돼서 당황했다.
혹시 이 책은 6장에 걸쳐서 각 사람이 각각의 방법으로 현 정부를 열심히 비꼬는 내용을 담고 있진 않을가 걱정됐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화'의 희망 보고서인걸까... 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6인 6색 인터뷰 특강' 이라는 말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에서 화라는 주제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화라는 주제에 담아서 설명했달까? 그리고 그 안에서 현재 세태(그것이 정부가 하는 잘못이든 사회 전반적인 잘못이든)를 꼬집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대사를 읽듯 볼 수 있어서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는것이다.
6장으로 마치 단편을 보듯 읽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없이 읽기에 좋지 않았나 싶다.
또한 연사들이 내가 알고 있지만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더욱 흥미를 유발시켰다.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먹거리에 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을 번역한 안병수,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과학 지식을 말해주던 정재승,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아마 인터뷰 형식의 글이 아니었다면 이사람들에 대해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연사에 대한 소개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 그사람!' 하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책을 다 일고 나서 보면 내가 원했던 내용을 담았던 부분은 두번째 장이었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교수의 특강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화를 내는것보다 화가 나있음을 알리는것이 더 효과적인 표현방법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결론이다. 하지만 엄청난 결론을 제시할 것이다..라는건 무리한 기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느정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은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나는 그 사람보다 세배 이상 화가 더 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사실. 무턱대고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사태 해결에도, 내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화'나는 것을 각 분야의 전문가가 설명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화 - 진중권, 김어준
신자유주의에 대한 화 - 홍기빈
먹을거리에 대한 화 - 안병수
범죄에 대한 화 - 금태섭
각 장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우리 사회의, 혹은 세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과 끝이 진중권, 김어준 연사의 인터뷰로 구성된것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가장 화가 나는 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화를 내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나를 화나게 하는 세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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